5th 상영작

제목 : 소름 Sorum
감독 : 윤종찬 (Yoon Jong-chan)
정보 : Korea/2001/109min/35mm/color/1.85/SR-D

군데군데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색 바랜 콘트리트 벽, 낡고 더러운 유리창, 대낮에도 으시시한 적막과 어둠이 감도는 긴 복도. 운전기사 용현은 짐 가방에 햄스터 한 마리를 가지고 얼마 전 화재로 죽은 소설가 광태가 살던 미금 아파트 504호로 입주한다.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을 예감하면서도 애써 무심하게 생활해 가던 용현은 공포와 절망 속에 짓눌린 듯 살아 가는 이웃들과 하나 둘 마주치게 된다. 30년전 그 504호에서 실제 발생한 비극적 살인사건을 얘기하는 이발소 주인, 광태가 남긴 습작노트를 빼돌려 그 살인사건을 미스터리 소설로 쓰는 작가. 그리고 아기를 잃고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 당하는 선영. 뭔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은 점점 가까워 지지만, 아파트에서는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30년 전의 비극적 사건에 얽힌 운명의 비밀이 하나 둘 벗겨진다.
미금 아파트의 낡고 어두침침한 공간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라난 용현과 어린 아들을 잃고 남편에게 구타 당하는 선영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아파트의 복도는 그들을 연결해 주는 통로이면서 그들의 황폐하고 고립된 영혼을 형상화한다. 고통 받는 사람들이 머무르며 끝내 떠나지 못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다시 돌아오게 되는 그 장소는 그 자체로 괴기스럽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공포-자기 존재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과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스크린에 처음 데뷔하는 용현 역의 김명민은 이상심리를 지닌 주인공을 훌륭히 소화했으며 <반칙왕>에서 주목 받은 장진영의 변신도 눈부시다. 첫 단편 <플레이 백>에서 상실에 대한 슬픔을 실험적 이미지로 묘사했던 윤종찬 감독은 이후 <메멘토>와 <풍경>을 통해 일관된 스타일로 환상적인 시공간을 연출했다. 장편 데뷔작인 <소름>도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뛰어난 캐릭터 묘사와 독특한 스타일로 <소름>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심리적 공포의 정수를 보여 준다. (김영덕)

윤종찬 (Yoon Jong-chan)

1963년생. 한양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91년 졸업 뒤 하명중 영화사에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하여 외화 수입, 번역 등 기획실장 일을 하다 92년 김영빈 감독의 [비상구가 없다] 조감독을 하면서 본격적인 감독 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시라큐스 대학원에서 영화연출과정의 MFA를 받았다. 귀국 후 96년 [플레이백], 97년 [메멘토], 98년 [풍경] 등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중 [풍경]은 동경과 끌레르몽-페랑 등의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소름]이 장편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