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상영작

제목 : 구멍 Black Hole
감독 : 김국형 (Kim Kuk-hyung)
정보 : Korea/1999/93min/35mm/Color

“오, 인간들이여, 암흑 같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 빅토르 위고
시커먼 그림자가 노려보고 있다는 불안, 가위눌림, 광기, 공포, 살의, 집착, 무관심, 기시감, 미시감, 그리고 의사소통의 부재... 요약하면 세기말적 정서나 징후쯤 될까? 설사 어쩌다 희망을 갖게 되더라도 구원은 믿지 않겠다는, 오늘날 우리들의 정서 말이다. 외과의사는 손을 떨고, 낯선 정사는 시도되기 전 깡패에게 무참히 짓밟혀버리고, 배우는 지긋지긋한 세상이라 외치고, 라디오에선 지진과 자살소식을 전한다.
나(안성기)를 사랑한 선영(김민)은 떠났다. 나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처럼 그녀를 찾기 위해 온 도시를 떠돌지만 언젠가 왔던 곳만을 맴돌 뿐이다. 나의 의식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거대한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될 것만 같다. 이미 죽은 자로 꿈꾸면서. 이처럼 현대인의 불안하고 암울한 정서를 감독은 흑백화면과 더불어 일관되게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연출방식을 따랐다. 진지하면서도 감독의 고집스러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80년대 배창호 감독의 단짝 작가이기도 했던 최인호의 소설 『허수아비』를(지금 최인호라니!) 이 겁 없는 감독은 주저 없이 데뷔작으로 택했지만 그 선택은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둔 듯하다. <애정 만세>의 라스트 씬만큼이나 길게 현대인의 정서와 울음소리가 전해지니까. 그래서 감독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지겹지? 지겨워 미치겠지? (박성경)

김국형 (Kim Kuk-hyung)

1964년 생. 서울예술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였다.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1995) 등, 주로 배창호 감독 조감독으로 일해오다 [구멍]으로 데뷔하였다.